고대 로마 – 성경의 절대 윤리가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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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본론

1 성경의 인권 정신이 로마를 바꾸다   

2 성경의 나눔 정신이 로마를 바꾸다 

결론 

서론

고대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신들을 받아들였죠. 겉으로만 봐서는 오히려 관용적이고 마음이 넓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절대적인 신이 없다는 것은 절대적인 윤리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절대적으로 믿는 윤리가 없으니, 인간들이 서로 합의를 해 정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강한 자가 법이 되고 약자는 항상 눌려 있는 겁니다. 기독교는 오히려 절대신을 믿었기에, 그 절대신의 절대 윤리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고대 로마 사회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본론

1 성경의 인권 정신이 로마를 바꾸다  

1.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소중함

1) 인간의 존엄함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다른 동물보다 소중하고 그것들을 지배할 권리를 갖습니다. (창세기 1:26-28; 시편 8편). 모든 인간은 가장 고귀한 신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존귀하다는 것이죠.

2) 인간 평등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합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에는 왕의 제도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라고 믿었죠. 그러나 백성들이 왕 제도를 요구합니다. 이 요구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왕이 생기면 그가 너희들의 아들을 데려다가 자기 군대 병정을 삼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밭을 갈게 할 것이다. 너희 딸을 데려다 요리하고 향료 만드는 자로 만들 것이다. 또 그가 너희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자기와 자기의 신하들의 것으로 삼을 것이다. 그런 제도가 뭐가 좋냐? 그런데도 백성들이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왕제도 때문에 엄청난 불평등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 자체가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에 대한 심판 자체가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너희들 맘대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왕제도와 같이 사람 위에 다른 사람을 두거나 사람 밑에 사람을 두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니다. 단지 어리석은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악습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8:4-22).

3) 어린이의 소중함

어린이마저도 한 인간으로서 소중히 여깁니다. 주일학교 대부분에 붙어있는 포스터 그림이 그것을 잘 말해주죠. 어린이가 예수께 오는 것을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고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죠. (마가복음 10:13-16; 누가복음 18:15-20; 마태복음 19:13-15).

2. 당시 로마의 문화와 교회의 비판

1) 유아유기 문화

유아유기 문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를 낳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기형이거나 딸이거나 아이 아빠가 의심스러우면 그 아기를 버리기도 했습니다. 버려진 아기는 죽거나 자식이 없는 사람이 가져가거나 노예 장수가 가져갔죠.

2) 기독교의 유아유기 비판

초대기독교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이 문제를 다룹니다. 갓난아이들을 “추위와 개들”에 의해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은 잔인하다며 비난하죠. 또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역시 이 문제를 말합니다. 외국산 애완 동물은 기르면서 자기 아이들은 밖에 내다버리는 부자들을 통렬히 비난하죠. 이러한 비인간적인 문화 역시 기독교의 전파로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3) 새디스트 문화

새디스트 문화가 있었습니다. 수만명에서 수십만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경기장에서 검투사 경기를 했습니다. 노예나 죄수 또는 전문 직업인이 서로를 죽이는 게임을 했죠. 결투 전에 신화이야기를 재현하는 드라마를 연출도 합니다. 예를 들면 반우반인-미노타우로스-을 낳는 신화를 재현하려고 여인이 황소와 성교를 강제로 하게 하고 죽입니다. 또 노새와 창살 안에서 성교를 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자를 들여 보내 노새와 여자 중 누구를 먼저 먹나 내기를 합니다. 가장 인기 있던 게임은 3-40명 죄수들 눈을 가리고 서로를 죽이게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중 살아남는 한명을 놓아주죠.   

4) 기독교의 새디스트 문화 비판

기독교인이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검투사 경기를 없애려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반발로 실패하죠. 404년 텔레마쿠스라는 수도사는 로마의 경기장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두 검투사가 싸우는 것을 뜯어 말립니다. 군중들은 화가나 그를 찢어 죽이죠. 기독교인이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격렬한 싸움만큼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립니다. 그 후 기독교화 된 게르만족이 로마를 멸망시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잔인한 게임은 사라지게 됩니다.

3. 정리

기독교는 그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성경의 정신을 바탕으로 개혁 운동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 보이는 여러 악습, 폐습들을 없앱니다. 로마는 반대로 인간 사이의 합의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오직 강자만이 자기 주장을 하는 가장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문화를 만듭니다.

2 성경의 나눔 정신이 로마를 바꾸다 

1. 성경의 나눔 문화

고대시대는 농경 사회였기에 땅은 재산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땅있는 사람이 진짜 돈있는 사람이었죠. 그 상황 속에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1) 땅의 평등 분배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은 단지 임시 거주자입니다. (신명기 25:23). 50년 마다 토지들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원래 이스라엘 땅은 각 사람이 평등히 나눠 가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의 불평등이 일어나겠죠. 그 소득 차이를 50년 마다 다시 시정할 것을 말씀합니다. (희년; 레위기 25:8-13).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나의 것이라 말할 수 없기에 가능합니다.

2) 가을 추수기 나눔

가을 추수 때 가난한 자들-약자, 고아, 과부, 외국인 등-을 위해 곡식을 다 걷지 않습니. 어느 정도 남겨 놓아 그들이 가져가게 합니.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약자의 대명사였습니다. 당시에는 경제권이 남성에게만 있어 남편을 잃게 되면 과부들은 바로 최하층으로 떨어지기 일쑤였죠 (신명기 24:19).

3) 십일조와 쉼의 권리

소득의 십분의 일은 땅이 없는 레위족들, 떠돌이, 고아, 과부들에게 줍니다. 현대 교회의 십일조의 원조입니다. 레위족은 이스라엘에서 성전 일만 하던 족속으로 이들도 땅이 없었기에 약자였죠 (신명기 14:28-29). 그리고 일주일 중 하루는 당신뿐 아니라 모든 일꾼, 자녀까지 쉬어야 합니다. 쉼의 권리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20:9-10). 7년 마다 땅은 쉬게 하며 모든 노예는 해방하라. 현대 안식년의 시초입니다. (레위기 25:3-5, 출애굽기 21:2-6).

4) 돈 관리와 나눔

임금은 해가 지기 전에 주라. (신명기 24:14-15) 또, 돈을 꿔줄 때 이자를 받지 않습니다. 당시 많은 빚은 노예를 만들었습니다. (레위기 25:35-37). 그리고, 맷돌이나 겉옷을 담보물로 잡지 않습니다. 맷돌은 기본적인 음식을 위해 곡식을 갈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습니다. 또 겉옷은 당시에 잘 때 이불, 요로도 사용했죠. 둘 다 기본적인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4:6, 10-13).

8) 초대 교회의 발전

신약 시대에 오면 위에서 본 구약의 제도들을 뛰어 넘습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교인들은 자신의 것을 공동 소유인양 나누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려운 자들을 서로 도우며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2:44-47).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2. 당시 로마의 상황과 교회의 실천

1) 로마의 빈부격차

엄청난 빈부격차가 있었습니다. 재산에 따른 계급제도가 그 한 예죠. 원로원 계급은 백만 세스테르티우스 이상의 재산이 있어야 했습니다. 기사계급은 사십만 세스테르티우스 이상이 있어야 했죠. 감찰관은 재산을 부풀려서 신고했는지 감시했습니다. 이 지위를 잃는 것은 많은 특권과 명예를 잃는 것이었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재산차이는 엄청났습니다. 700-17,000배 정도. 어떤 종류의 복지제도도 없었고 자선단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빈부격차를 억제하는 제도도 없었습니다. 단지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빵과 서커스를 제공해 줄 뿐이었죠. 이것이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합의의 결과였습니다.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 자본주의 비슷했습니다.

2) 로마의 나눔 문화 없음

가난한 자를 도와야한다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가난은 신의 뜻이거나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당하기에 오히려 조롱 당합니다. 만일 자신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을 돕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거나 명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였죠. 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세네카는 말했죠. “네 부하에게 친절하라! 운명의 장난으로 그가 너의 상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윤리 없이 인간들 사이의 합의만 강조하니 현 체제 유지-극심한 빈부격차-만 지속할 뿐이었습니다.

3) 교회의 나눔 문화 실천

하지만 반대로 당시 교회는 어려운 자들을 돕는 자선활동을 시작합니다. 성경 정신을 바탕으로! 자선의 개념도 없던 때에 말이죠! 심지어 그리스쪽 교회 사람들이 외국인 이스라엘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헌금을 걷어 해외 원조를 한 것이죠. 인류 최초의 해외 원조일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의 나눔 정신은 확산되어 이어져 내려옵니다. 그래서 현대 미국의 기부 문화, 선진국의 복지 제도 등을 만듭니다.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내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3 정리

로마는 나눔 문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빈부격차와 비인간적인 관계만이 지배했습니다. 교회는 그러한 차갑고 냉혹한 로마의 문화를 많이 바꿉니다. 나눔 문화를 직접 실천하며 보여 주면서.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기독교에 돌아오게 되었죠. 보다 더 기독교적인 나눔 문화는 중세 시대 들면서 시작됩니다. 로마가 보다 더 기독교화 된 게르만 족에게 멸망하면서.  

결론

고대 로마의 다신교 문화에서는 절대적인 윤리가 없었습니다. 인간들의 타협과 합의만이 있을 뿐이었죠. 그러니 모든 것은 강한 자 위주가 되었고 그것을 당연히 여겼죠. 모든 신을 받아들이는 관용적인 문화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절대 신이 없기에 절대적으로 믿는 절대 윤리도 없습니다. 강자만이 유리한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되죠. 오히려 유일신만을 믿는 기독교는 그 신의 절대적인 윤리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절대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대 로마를 변화시켜 갔습니다.  

 참고문헌:

손 호현,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2008).

앨버트 벨, 신약 시대의 사회와 문화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