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정신이 만든 한국 개혁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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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기독교는 한국에 들어와 많은 개혁 을 이뤄냅니다. 그 이전에 있던 유교, 불교, 도교가 생각지 못했던 사회 모순을 타파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보다 현대적으로 바뀝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 나갔죠. 그 개혁 내용들을 살펴 봅니다.

본론

1.학교건립

서양 선교사 중심으로 여러 중고등,대학교 설립: 예) 1885 배재 학당, 감리교, 서울. 1886 이화학당, 감리교, 서울. 1886 경신학교, 장로교, 서울. 1887 정신여학교, 서울. 1894 광성학교, 감리교, 평양. 1894 숭덕학교, 감리교, 평양. 1898 맹아학교, 평양. 1901 장로회신학교, 장로교, 서울. 1905 영명학교, 감리교, 공주. 1906 계성학교, 장로교, 대구. 1907 신명여학교, 장로교, 대구. 1908 창신학교, 장로교, 마산 등등

2. 여성인권신장

1) 장로교공의회 여성인권결의안(1901): 1) 남녀 장성하기 전 혼인시키기 2) 과부가 두 번 시집가는 것 금하기  3) 혼인 맺을 때 돈 받는 것 4) 부녀를 압제하고 멸시하는 것—이런 것들을 철폐하라고 결의함

2) 감리교 1895년 선교사연회: 일부다처주의 정죄하고 첩을 가진 자는 교인으로 승인 안함

3) 여성교육 시작—감리교 이화학당 (현재의 이화여대의 원조) 세움

4) 황해도 평산 감바위교회(그리스도신문 1901. 6.20)—부부가 서로 존댓말쓰고 한 자리에서 식사할 것 결정

5) 언더우드-기독교로 조선남성들이 여성들이 집에서 고된 일만 해서는 안되고 즐거움도 가져야 함을 깨달음 (The Call of Korea, p.52-53)

3. 사회신분 타파

1)당시 선비는 존대받고 기술자, 상공인은 천시, 특히 노비, 백정은 인간 이하 취급  받음, 노비는 재산으로 매매, 상속, 증여 대상, 1인은 말 한 필 가격

2) 고종황제 의사였던 에비슨: 백정 집에 가 직접 치료, 내무대신 유길준에게 백정도 상투 틀고, 갓 쓸 수 있는 권한 요청의 편지 보냄 (당시 조선 남성의 명예의 상징이 상투 틀고 갓쓰는 것이었다고 함)

3) 1903년 감리교 연회록 결정사항: 1. 교인은 노예를 소유할 수 없고  노예제도 지지해서는 안된다 2. 노예 있으면 해방하라 3. 과부매매는 죄악이며 그 죄를 지은 자는 처벌

그리스도 신문 1906. 5. 24에 따르면

“순안 박인시씨는 그 종을 속량하야 딸을 삼았고, 평양 서촌 창마을 리씨는 주를 밋기 전에 일개 비자를 천여 금을 주고 사다가 부리다가 자기가 죄에서 속량하고 은혜로 하나님 딸이 됨을 깨닫고 그 종에게 하는 말 “내가 지금 주께 기도할 때와 성경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너를 종으로 두는 것이 늘 마음에 불안하고 다시팔자 한즉 인생을 차마 짐승같이 매매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뜻에 합당치 아니한즉 오늘부터 너를 속량한다”하고 문서를 내어 소화하고 친딸같이 사랑한다 하니…”

4. 노동의 신성강조

1) 노동은 상놈들이나 노비들이 하는 천한 것이라는 사고방식—양반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굶어 죽으면 죽었지 일을 안하고 사기, 착취나 도박 주정에 빠졌다고 함

2) 여러 실업학교를 세워 노동은 신성한 것임을 가르치고 여러 기술들을 가르침

5. 한글 교육

1) 당시 한글은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기독교에서 적극 한글 교육 실시

2) 원칙적으로 모든 교인들이 한글 읽을 수 있도록 계몽, 서른 살 미만인 사람들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가 한글을 깨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3) 한글학자 최현배의 “기독교가 한글에 미친 영향” (“새문안 교회 문헌 사료집” 438-486) 내용:

1> 한글을 민중 사이에 전파했다, 2> 신도들은 사상표현의 말씨를 배우고 글읽고 글쓰는 방법도 배움 3> 한글에 대한 존중심 일으키고 한글지키는 마음 길렀다 4> 한글의 과학적 가치 인정 5> 배달의 말글을 세계에 전파 6> 한글만 쓰기 기운 조성함

6. 결핵,나병퇴치

1)후진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결핵—100만명 병 앓음

2)병원건립: 1920년 세브란스병원의 내과의사 스타이츠 세움-일금 600원 들여 최초의 결핵병원(서울), 평양에는 1925년 결핵진료소, 크리스마스 실 판매운동

3) 미국 북장로교에서 최초로 나병치료 시작, 최흥종목사 여러 유지들에게 지원금 받아 나병근절협의회 만듬

7. 맹학교 설립

1)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하며 그 가족들까지 멸시함

2) 이 때 평양에서 감리교 의료 선교사 윌리엄 홀이 점염병으로 죽고 그의 부인 로제타 홀이 이어받아 일을 했는데 1894년 앞 못보는 소녀 하나를 데려다 가르쳤는데 이것이 한국 맹아학교의 효시, 1906년 뉴욕의 클락 여사가 교실을 위한 자금 보내주어 교실마련, 1907-7, 1909-12, 1915-40학생 수업, 점자 기술들 가르침 장로교 평양의 마펫 목사의 부인 앨리즈는 남자를 위한 맹학교 시작, 1915에 합병, 일시 중단했다가 1935년 이창호 목사님에 의해 재개.

결론

위에서 본 것처럼 한국 개화기때 교회는 한민족이 깨어나게 하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개혁 을 받아들입니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되어 개혁 운동을 이어 나갑니다.

참고 문헌:

김 인수,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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